Pak Kyung-Lee

"생명의 아픔" 중

그러나 사방에 충만한 생명의 소리를 듣는 것이 반갑지 않고 몹시 괴롭다. 10여 년 전, 기르던 꿩들이 도망하여 울타리 밖 숲 속에서 살았는데 꿩이 우는 소리를 들으며 아직 살아 있었구나 싶어 반갑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. 이제는 꿩 우는 소리에 가슴이 아프다. 어디 가서 저 새들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 것인가 싶어서...

당시의 원주는 추운 곳이었습니다. 삭막한 군사도시에는 감나무는 물론 백일홍도 없었습니다. 어떤 분은 내가 글 쓰기 위해 원주로 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그건 내게 사치스런 것이었습니다. 나는 인생만큼 문학이 거룩하고 절실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. 단구동의 뜨락은 꽤 넓었고 그것이 내 세계의 전부였습니다. 삶은 준열하고 나날의 노동 없이는 내 자신이 분열되고 말 것만 같았고 긴장을 푸는 순간 눈은 감은 채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습니다. 모든 것을 거부하고 포기했으며 오로지 목숨을 부지한 것은 가엾은 내 딸, 손자의 눈빛 때문입니다. 그 때 머리가 다 빠지고 철색으로 변한 딸아이의 얼굴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내 마음속의 짙은 피멍입니다. 그리고 언어가 지닌 피상적인 속성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절감하고 있습니다. 진실에 도달할 수 없는 언어에 대한 몸부림, 그럼에도 우리는 그 언어에서 떠나질 못합니다. 그게 문학이 아니겠습니까. 그리고 그 시절, 거부하고 포기한, 극한적 고독의 산물이 "토지"였을 겁니다.

She is a great writer and conscientious intellectual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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